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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미경칼럼]용서를 구하는 용기!충북분석심리연구소 소장
  • JBEN 중부뉴스
  • 승인 2014.02.10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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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미경 소장

나는 평소 다양한 직업에 지인들을 만나지만 몇 해 전에는 색다른 직업의 인물을 만난일이 있었는데 그 사람이 자신을 독립영화감독이라고 소개했다. 영화에 대해서는 보는 것 외에는 거의 문외한인 나로서는 그 감독의 얘기들에 호기심으로 귀가 솔깃했고 듣는 내내 마음 짠한 기분을 감출수가 없었다. 돌려 들은 얘기로 독립영화산업이 얼마나 힘든지는 익히 알고 있었던 터였지만 실제로 그 일을 하는 사람의 입을 통해 듣는 현실적 얘기는 더욱 암담했었다.

세상은 이상과 현실의 괴리를 늘 경험하게 하는 것 같다. 뜻이 좋으면 돈이 안 되고, 돈이 되면 내용은 상업적일 수밖에 없는 현실이 정말 속이 상했다. 비단 이러한 현상이 영화산업에만 국한된 이야기만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체계에 용기 있게 도전장을 낸 영화가 세간의 화제가 되고 있다. ‘또 하나의 약속!’ 이 그것이다. 이 영화는 영화의 작품성보다 영화의 제작과정이 더욱 눈길을 끌고 있는데 영화의 섭외부터 완성까지 소위 ‘제작두레’로 제작되었다는 것이다.

이 영화에 관련 있는 사람들은 오히려 기적이 만들어 낸 영화라는 말을 서슴없이 한다. 무엇이 그들로 하여금 기적을 체험하게 한 것일까? 나는 궁금했다. 그래서 나는 이 영화의 제작 과정을 면밀히 접하면서 ‘아직은 세상이 살 만하다’는 생각을 다시 한 번 하게 되었다. 내가 살 만하다고 결론을 내린 이유는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진실(거짓이 없는 사실)’이라는 명제에 흥분 한다는 것이다. 과거 우리 역사를 돌아봐도 민중이 일어나고, 분노를 표출하고, 대항하고, 투쟁하는 일련의 모든 일들이 결국 ‘진실’을 향한 외침이었고, 지금도 우리는 그러한 이유로 마음을 모은다.

사람들은 누구나 실수를 경험하고 누구나 아픈 과거를 갖고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그러한 실수나 아픔이 늘 부정적으로만 작용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한 경험들이 지금 자신이 하는 일에 보완점이 되기도 하고 대비책을 마련하게 되기도 하면서 개인과 사회는 발전해 나가기 때문이다. 만약에 그 누구도 실수하지 않고 슬픔이나 아픔을 경험하지 않았다면 어쩌면 이 세상은 쾌락에 빠져 정신적으로든 사회적으로든 혼란한 상태에 이를 것이다.

진실을 요구한다는 것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라는 것이다. 더 나아가 자신의 아픔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수용한 후 용서를 구하라는 것이다. 이 작업은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해야 할 일종의 소명과도 같은 것이다. 그 어떤 결과를 두고 누구를 질책하거나 비방하는 것은 사실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러한 행위는 단순한 화풀이 정도는 되겠지만 결국에는 정말 얻고자 하는 그 어떤 것도 얻지 못하고 상처나 공허함만 남는 것이다. 우리의 생활에서도 마찬가지다. 가정이나 직장에서나 또는 개인의 관계에서도 우리는 이러한 경험을 많이 하게 된다. 물론 긍정적 비판 즉, 사물의 옳고 그름을 가려 판단하거나 밝히는 행위는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그 또한 ‘비판을 위한 비판’이어서는 안 된다. 그러한 비판은 결국 소모전밖에는 되지 않고 결국 상처만 만든다.

‘잘못을 인정’하는 행위는 상당한 ‘용기’를 필요로 하고 그 중에도 자신의 ‘자존심과 결부된 잘못을 인정’하는 것은 더욱 큰 ‘용기’가 필요하다. 그런데 우리가 정말 듣고 싶은 말은 바로 여기에 있다는 사실이다.

자존심을 지키려고 거짓을 말하고 이유를 만들고 또 다른 핑계를 찾는 것은 결국 분노를 만든다. 사람들은 말로 정확하게 표현하지는 못하더라도 느낌으로 알 수 있는 일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해결되지 못한 억울함을 경험하는 사람들은 ‘신은 알거야!’라며 하소연을 한다. 이러한 하소연은 분노를 만들고 이러한 분노는 한을 만들며 이 한은 결국 사람을 파멸(질병, 우울, 자살)로 이끄는 화근이 된다.

우리는 날마다 많은 오류들을 만난다. 자신이 만들어 낸 생각의 오류, 타인이 선택한 판단의 오류 들이 그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불안정한 인간이 갖고 있는 당연한 결과다. 하지만 우리가 살만하고 살고 싶은 여건을 만들기 위해서는 ‘잘못을 인정하는 용기’, ‘용서를 구하는 용기’를 내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

무엇을 성취하기 위한 용기보다 용서를 구하는 용기는 더욱 값진 선택이며 이러한 용기를 가진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가정과 사회와 국가는 물론 더불어 개인이 행복해질 수 있는 최선의 지름길일 것이다.

JBEN 중부뉴스  redstar@jb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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