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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통팔달 은평, 일제 강점기 관련 남북 학술교류 추진 ”은평구, 남북 학술문화 교류 추진… 일제 강점기 도시 역사와 항쟁사 연구
  • [경기=중부뉴스통신]손성창 기자
  • 승인 2020.08.14 0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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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평구청
[경기=중부뉴스통신]손성창 기자 = 김미경 은평구청장은 75주년 광복절을 맞아 8.15 메시지를 발표 했다.

은평구는 광복 75주년을 맞아 남북 학술문화 교류를 추진하는 선도도시로 나갈 계획이라고 전했다.

이에 은평구는 역사적으로 교통·통신망의 중심선 상에 있었던 북한도시 한 곳과 손을 잡고 일제 강점기 도시 역사와 항쟁사를 공동으로 탐색해 보고자 한다.

이러한 작은 노력을 시작으로 장기적으로 지속가능한 관계를 일궈가며 보다 폭넓은 남북 학술문화 교류로의 확장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김미경 은평구청장 8.15 메시지 전문

“제75주년 광복절을 맞이해”

26살의 한 청년이 북경에서 출발해 철도를 타고 경성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그 청년은 아이를 데리고 여행하는 일본인 여성에게 유창한 일본어로 말을 걸었습니다.

일본 경찰은 이들을 다정한 한 쌍의 일본인 부부로 봤다.

무사히 일본 경찰을 따돌린 청년은 조선총독부로 향했다.

총독 사이토 마코토를 암살하고자 한 것이다.

그는 조선총독부 청사로 들어가 폭탄을 투척했다.

일제 식민통치의 심장부에 구멍을 내 버렸습니다.

일제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든 이 청년의 이름은 김익상이다.

그리고 청년 김익상이 북경에서 의주로 다시 경성으로 들어오면서 이용했던 철도가 바로 은평 수색역을 지났던 경의선이다.

대대로 은평은 교통·통신이 사방으로 통하는 사통팔달한 지역이다.

은평구 녹번동은 한반도의 중앙에 위치해 북으로 의주까지 1,000여리, 남으로 부산 동래까지 1,000여리라 해서 양천리라 불렸습니다.

한양에서 의주까지 뻗은 국가의 중심도로인 의주대로는 도성을 나와 녹번현, 양천현, 관터고개, 연신내, 역촌동을 지나 박석고개를 넘어 구파발로 향하고 의주까지 이어졌습니다.

구파발은 국가의 중요한 소식을 빠르게 전하던 파발마들이 쉬던 곳이며 봉산에는 횃불과 연기로 국난을 전달하던 봉수대가 있었다 한다.

근대를 맞이하며 우리 민족이 교통과 통신의 발전을 주도적으로 이뤄내어야 할 시기에 이르러 우리 민족은 그 기회를 박탈당하고 말았습니다.

일제는 의주대로의 경로를 따라 대륙침략의 야망을 담은 경의선 철로를 깔았습니다.

이 철로를 통해 조선에서 약탈한 군수물자를 실어 날랐습니다.

경의선의 주요거점이었던 수색에는 역사 뿐 아니라 철도의 차고와 철도 차량을 분리·연결하던 조차장, 철도 역무원들이 거주하는 관사촌을 지었습니다.

통신 분야에서는 우리나라의 통신사업권을 강탈한 한일통신협정을 맺어 우리나라 최초의 전신선인 서로전신선을 한반도지배의 수단으로 삼았습니다.

일제는 이 전신선을 따라 통신케이블을 매설해 만주까지 연결했으며 통신을 사용해 한민족을 감시하고 탄압했음은 물론이다.

수도인 경성에서 북으로 향하는 통신케이블의 길목에 있던 경성전화중계소는 지금의 대조동에 위치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경의선과 서로 통신망은 우리 민족의 항쟁의 이야기를 품고 있다.

우리 독립운동가들은 경의선을 통해 만주로 탈출하거나 경성으로 들어와 구국활동을 펼쳤습니다.

경의선 선로를 따라 3.1 만세운동의 소식이 불길처럼 번져 수색역·개성역·사리원역·평양역·신의주역에서 우리 민족의 독립을 세계에 외치기도 했다.

우리 독립군은 일제가 틀어쥔 통신망을 벗어나 그들만의 암호를 사용해 비밀리에 소식을 전하며 독립운동을 이어갔다한반도 교통과 통신의 중심지로 성장했어야할 사통팔달의 은평 지역은 이렇게 일제 치하에서 아프고 어려운 고통과 항쟁의 세월을 보내야 했다.

뿐만 아니라 해방 이후 한반도의 허리가 끊기는 분단의 현실을 맞이하면서 철도도, 통신도 중간에서 끊겨버리고 말았습니다.

단재 신채호 선생의 이야기를 새겨 봅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100년도 더 된 과거의 역사가 아프더라도 매번 다시 생각하며 잊지 않으려고 애쓰는 이유는 이를 통해 미래를 향한 혜안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8월 15일 광복절 75주년을 맞이하며 우리에게 있어 일제 강점기의 의미를 돌아보고 과거를 통해 우리의 미래를 조명해 봅니다.

과거 한반도를 남북으로 이었던 길과 통신망을 따라 오랜 동안 이어져 내려온 교류와 소통의 역사를 잊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그 역사가 일제 강점기과 해방 후 혼돈의 분열과정을 거쳐 귀착된 현재의 모습에서 한 발짝 나아갈 방향을 모색했으면 좋겠습니다.

남과 북이 한때 한 나라로서 함께 겪었던 역사를 찾아가며 문화를 공유하는 출발점에 설 수 있다.

그러한 출발점에서 앞으로 뻗은 여러 가지 선택지 중 최선의 경로를 잘 찾아낼 수 있는 은평구 지역사회의 집단지성의 힘을 믿습니다.

그 믿음을 주춧돌 삼아, 은평구는 남북 학술문화 교류를 추진하는 선도도시로 나아가고자 한다.

은평구는 역사적으로 교통·통신망의 중심선 상에 있었던 북한도시 한 곳과 손을 잡고 일제 강점기 도시 역사와 항쟁사를 공동으로 탐색해 보고자 노력한다.

이러한 작은 노력을 시작으로 장기적으로 지속가능한 관계를 일궈가며 보다 폭넓은 학술문화 교류로의 확장을 추진한다.

다음번 광복절에는 새로운 이야기로 역사의 빈 페이지를 함께 채워 넣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

[경기=중부뉴스통신]손성창 기자  desk@jungbu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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